생활적
maesil..
2024. 5. 5.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ㅡ 손창섭, 비 오는 날, 10p.

 

 

물탕에 젖어 꿀쩍거리는 신발 속처럼, 자기의 머리는 어쩔 수 없는 우울에 잠뿍 젖어 있는 것이라고 공상하며 원구는 호박 덩굴 우거진 철도길을 걸어 나갔다. 그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기에는 자기의 목이 지나치게 가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것은 불안한 생각이었다. 

ㅡ 손창섭, 비 오는 날, 15p.

 

 

 

순이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 그는 왈칵 시체를 끌어안았다. 자기의 입술을 순이의 얼굴로 가져갔다. 인제는 순이가 아니다. 주검이었다. 동주는 주검에 키스를 보내는 것이었다. 주검 위에 무엇이 떨어졌다. 눈물이었다. 섧지도 않은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자기는 분명히 지금도 살아 있다고 동주는 의식했다. 살아 있으니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은 자기가 확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장래'라고 생각하며, 동주는 주검의 얼굴 위에 또 한 번 입술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ㅡ 손창섭, 생활적, 66-67p.

 

 

삽페는 그 어떤 인간적 가치와도 타협을 시도하지 않는 궁극의 염세주의자입니다. 삽페에게 인간의 '자아'는 돌연변이일 뿐이며,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데 인간을 자연과 괴리된 부조리하고 혐오스러운 생물로 만들어 버린 원흉입니다. (...) 억제의 장치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삶의 진실에 침묵하며 환상을 유지하는 '고립', 대의, 유댇감 등으로 내가 중요한 존재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고착', 일과 공부처럼 감각을 사로잡아 존재의 본질에 관심 갖지 못하게 하는 '산만함', 아름다움으로 삶의 고통을 위장하려는 '승화'입니다. 이 억제 장치가 망가질 때, 그래서 우리가 자아를 놓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본질인 채로 세게와 연결될 때, 그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 '우울'이라고요.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은 이러한 '억제 장치'를 끄고 살아가는 듯 보입니다.

ㅡ 김지현(민음사 편집자), 우울과 의지, 170p.

 

 

손창섭은 전후 한국문학 작가 중에서도 '가장 문제적인 소설가'로 꼽힙니다. (...) 손창섭의 소설은 전후 한국 사회를 재건할 이상향을 제시하는 대신 절망적인 상황을 세밀히 그려 내는 데 몰두합니다. 꿈을 포기한 청년들, 훼손된 몸과 마음, 인간적 가치가 무너져 원초적 욕망만이 가득한 사회, 그곳에서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배회하는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당대 비평가들은 이들이 인간 혐오를 표방하는 '부정적 인물'이라며 사회에 기여할 '긍정적 인물'을 창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 작가가 애써 만든 '긍정적 인물'이란 초점에 맞춰 다시 읽어 보니 새롭게 보이는 면모가 있었어요. 바로 자신의 욕망을 멈추는 의지, '물러섬'이었습니다. (...) 이들이 선택한 물러서기로부터 모두의 일상이 지켜졌다는 사실을요.

ㅡ 김지현, 우울과 의지, 172p.

 

 

염세주의로 가득 찬 마음을 샅샅이 살피다 보면 종종 그 한구석에 웅크린 "헛된 희망 말고 현실적인 진짜 희망을 원해!"라는 열망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 어쩌면 손창섭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희망도 그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전후 한국 사회를 지배한 대단한 이데올로기 대신에,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결정, 작고 연약한 의지에 만들어지는 위태롭기도 따뜻하기도 한 평범한 삶을요.

ㅡ 김지현, 우울과 의지, 172p.

 

 

생활은 원래 그저 무탈할 수만은 없는 것, 무탈하거나 무탈하지 않은 모든 순간이 뒤섞이고 정리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이 넘쳐나 엉망이 된 자리까지가 바로 우리의 생활이라고요. 어쩌면 이런 혼란이야말로 '내가 아는 나' 너머 더 크고 넓은 '살아 숨 쉬는 나'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느 하루 미진한 기분에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와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간 익숙한 일상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 자신 그리고 세계와 연결되는 중이니까요.

ㅡ 김지현, 우울과 의지, 173p.

 

 

 


 

김지현 편집자가 가지고 있는 시선이 색다르고 너무 좋았다네.. 나는 어휘가 부족해서 이런 말 저런 말 하지 못하지만 손창섭을 문제 작가로만 해석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여성혐오를 넘지 못한 허무주의 https://brunch.co.kr/@cyomsc1/56

 

02화 여성혐오를 넘지 못한 허무주의

손창섭 《비 오는 날》(문학과지성사, 2005) | 손창섭, 전후 최고의 문제작가 전후 최고의 문제작가라 알려진 손창섭의 일관된 주제는 무기력한 남자들이다. 그들에겐 삶의 의미가 없고(〈비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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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가님의 브런치 글도 공감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100%) 

 

요즘 한국 사회도 허무주의로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되어(팬데믹 이후) 70여 년이 흐르고 흘러 어쩌면 손창섭의 허무주의가 현대 한국 사회와 맞물려 있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민음북클럽에서 손창섭의 단편 소설을 신청했다.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유지해오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격동의 시대와 어울리는 글이다. 물론 그의 여성혐오는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허무주의의 우울과 무기력 속 헛되지 않는 '진짜 희망'을 캐야 하는 건 분명하다. 문득 쳐다본 책장에서 신형철 평론가의 <몰락의 에티카> 책등에 쓰인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다.' 구절이 손창섭을 가리키는 말처럼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의 표정을 손창섭이 허무주의 문학으로 펼쳐내고 있는.